- 그러니까…. 아, 망할. 수화기 너머로 한탄처럼 터진 욕설에 혜성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함께 점심을 먹고, 영화를 보고,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이후의 소소한 일상을 서로에게 보고하던 와중이었다.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어울리지 않게 잔뜩 신나서 떠들어대더니 갑자기 무슨 일이래. “왜, 뭔데.” 질문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대신 덜그럭, 하고 스마트폰...
“눈이구나.” “예.” 무미건조한 대답에도 가볍게 미소를 베어 물던 자그마한 다홍빛 입술을 감히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 오래도록 고민했지만 정혁은 지금껏 그 답을 찾지 못했다. “제법 큼지막하구나.” 검지 끝으로 손수 받아낸 눈송이만큼이나 보드랍고 투명하게 시린 모습이었던 그의 주인. 길쭉한 손가락이 가볍게 비벼대는 것이 눈송이인지, 아니면 심장인지 알 ...
삑삑, 익숙하게 패드를 누르는 소리가 나더니 싸늘한 바람 한 줄기가 거실까지 흘러 들어왔다. 후드 티셔츠 한 장에 반바지 차림으로 소파 위를 뒹굴던 정혁은 본능적으로 부르르 떨었다. 요 며칠 겨울답지 않게 따스하다 했는데, 고작 하루만에 이렇게 추워질 줄이야. 혼자 투덜대고 있자 이내 흰 모자와 마스크, 보드라운 캐시미어 목도리, 얄쌍한 발목만 겨우 드러날...
너는 끝이 있을지조차 확실하지 않은 모래 위를 힘겹게 기어가는 달팽이 같았다. 모래에 남긴 한 줄기 가냘픈 흔적도 금세 말라 버리고, 건조한 바람이 여린 몸통에 상처를 내고, 끝내 제 몸뚱이마저 말라 서걱거리는데도. 너는, 동그란 더듬이를 빳빳이 세운 채 미련하게 모래 위를 기는 달팽이였다. - 야, 혁정아. 쟤 진짜 너 본다? - 보든 말든 니 일이냐? ...
안녕하세요, 요새 여러 번 여러분을 뵐 면목이 없는 불성실한 독로입니다ㅠ 최근 지각이 잦다 못해 급기야 두 번이나 공지 없이 휴재마저 일삼았던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오늘도 죄송한 말씀을 드리게 되어 정말로 면목이 없습니다ㅠ 수개월째 현업이 바빠져 글 쓸 시간을 내기가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금요일 안에 업로드가 가능한 페이스...
환풍구로 스산한 바람이 스며들었다. 공기 중에 배어 있던 섬뜩한 향기가 옅어진 자리를 형용하기 힘든 불길함이 대신하고 있었다. 앤디가 고개를 흘끔 들어 시선을 위로 향하자, 함께 복도를 산책하던 세즈가 의아한 눈빛으로 그런 그를 돌아봤다. 재빨리 갈무리했지만 희미한 불안이 잔여물처럼 그 눈빛 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사랑하는 상대에게 완벽한 신뢰를 주지 못하...
선발대의 전멸과 다시 등장한 생명의 계약자. 그가 심장에 입은 치명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녹색의 빛을 온몸에 휘감고 끈질기게 삶을 붙잡는 모습. 죽은 줄 알았더니 느닷없이 순환의 계약자가 되어 나타난 전씨 가문의 후계. 눈치를 살피며 입을 다물고 있기엔 지나치게 수상쩍고 의문스러운 정황들이 많았다. 누군가 은밀히 입밖으로 꺼낸 의심이 그 가문 사람들에게 퍼...
“왜, 이게… 이게 뭐야? 왜 이래? 이게 다 뭐야?” 그 와중에 끼어든 낯선 음성에 동완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기름칠을 하지 않은 기계처럼 관절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이윽고 쳐다본 곳에 투명한 몸이 출렁거리는 생소한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아아, 그래. 충격의 시작은 너의 목소리였는데, 에릭 저 멍청한 자식이 순간 멈췄던 것...
그 오랜 세월 동안 생명을 거두는 건 한 번도 해본 적 없었지만, 일단 요령을 터득하고 나니 두 번째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필요마저 없었다. 키르프의 비극을 보고 공포에 질려 도망치려던 티치는 첫 걸음을 떼기도 전에 생명이 뽑혀 나가고 말았다. 퍼석, 육중하게 모래 바닥에 파묻힌 몸뚱이를 혜성은 무감정하게 내려다보았다. 연결점을 잃어버린 영혼의 빛이 서서히...
모종의 이유로 비번을 걸어 연재 중이었던 리즌 2, 3부를 전부 공개 전환합니다. 그간 읽어주시는 분들께 여러모로 불편을 안겨드려 죄송한 마음을 항상 안고 있었는데, 여차저차 해서 공개 전환해도 무방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D 지금까지 비번을 일일이 입력하는 수고까지 감수하며 읽어 주셨던 분들께는 정말 아파트라도 뽑아서 발 앞에 놓아드리고 싶을 정도로 감사하...
현업에 치여서 이번 주는 업로드가 힘들 것 같습니다ㅠ 주말까지 일정이 꽉꽉 차서 도저히 짬이 안 나네요ㅠ 가능한 한 빨리 다음 화 업로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주인의 흔적을 찾았다. 사막 가장자리의 바위 지대로 향한 듯하다. 한 발 앞서 떠난 선발대로부터 보고가 들어오자마자 에릭은 잔인하리만치 빡빡하게 수색대를 휘몰아쳤다. 행군을 따라오지 못하는 낙오자는 가차없이 버리고, 자신과 동완의, 정확히는 동완을 어깨에 태운 인형의 속도를 기준으로 삼아 무리를 채찍질했다. 견디지 못한 인원의 상당수가 떨어져 나갔지만 그는...
글 쓰는 독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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